현실의 황량하고 무자비한 공기 속에서 느끼는 소외와 두려움에 지친 나는, 성인이지만 어린 시절 무념무상의 상태로 놀이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그립다. 정신적인 퇴행은 병리적인 치료 대상이겠지만 슬며시 그림으로 발현된 오랜 장난감들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익숙한 사랑의 대상으로, 현실의 냉담함을 망각하게 하는 웜홀과 같은 위약이 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그 대상에 생명을 부여하여 사랑하고 소통하고 그 세상이 전부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으로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진부함과 안락함이 배척당하는 시대에, 날카롭고 신박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주저앉아 반나절쯤 시간을 진부하게 낭비할 수 있는 자유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