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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1953 ~ 1954 51.0 x 44.0 cm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이중섭은 소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폭발적으로 보여주었다. 앞발에 힘을 모으고 언제든지 튀어나갈 듯한 역동적인 소의 표현은 그의 선묘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는 유년시절부터 이어온 그의 관찰력에 바탕한다. 오산학교 시절, 들판의 소를 유심히 관찰하다 소 도둑으로 몰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다음은 김환기의 말이다. “작품 거의 전부가 소(牛)를 취재했는데, 침착한 색채의 계조, 정확한 데포름(deformation), 솔직한 이마주(image), 소박한 환희-좋은 소양을 가진 작가다. 쫓아오는 소, 외치는 소, 세기의 음향(音響)을 듣는 것 같다. 응시하는 소의 눈동자 아름다운 애련이었다.”(김환기, <문장>(1940.12)) 통영에서 보냈던 시절보다 10년 먼저 이중섭의 소의 표현은 이러한 평가를 이끌어 냈다.

은지에 그린 이중섭의 드로잉에 등장하는 소재는 역시 우리의 향토적 성격 짙은 것들이었다. 앞서 열거했던 소재들은 단순한 형태이나 역동적인 동세를 이루고 있으며, 따뜻한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특히 [새]와 [아이들] 연작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던 1950년대는 그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특유의 해학미가 넉넉히 보인다. 이는 이중섭이 가족과 재회하고 이룩하고 싶었던 이상향을 표현한 것으로, 특히 다양한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왜곡되고 복합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이중섭의 작품은 선 표현의 능란함과 강렬함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러한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은지화, 편지화, 삽화 및 스케치 등을 포함하는 드로잉 작품이다. 그런데 담배 내부 포장지였던 은지(銀紙)에 그렸던 작품은 종이를 살 수 없던 이중섭의 경제적 궁핍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물론 이중섭은 유복한 유년시절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생활고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을 했을 만큼 궁핍하게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매체, 즉 은지를 비롯 합판, 종이, 심지어 책의 속지에도 그림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유화물감을 비롯해 연필, 크레파스, 철필, 못, 송곳 심지어 손톱까지 다양한 표현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이중섭이 실험적인 작업을 추구하기 위해 은지와 같은 다양한 매체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Selected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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