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의 부조화> 시리즈는 온전히 순간성에 집착한 작업이다. 가장먼저 수채로 시작하는데, 붓은 6호 하나만 쓴다. 붓의 가장 끝 촉의 한 가닥에 집중해 오로지 선들로만 이어간다. 선을 긋는 중엔 물맛과 함께 옅고 짙은 선들이 중첩을 이루며 형상이 모여 부조를 일으킨다. 반복적으로 찍어낸 흔적도 있고, 직접 손과 팔로 무르고 던져낸 흔적도 있다.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은 곧 면을 나타내며 색면을 통한 공간까지 차원은 확대된다.
수채로 작업이 완성되면 오일 파스텔을 얹고 디지털로 옮겨진다. 원색에 가까운 강한 색을 좋아한다. 중첩에 집중해 붓으로 칠한 선의 면적을 새로운 감각에서 비롯된 짙은 질감으로 마티에르를 살려 올리기도 하고, 디지털로 색의 반전을 주며 작품 속에 계속된 변화를 찾고 새로운 차원이 깨어나도록 형상화한다. 그림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좋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사랑해라. 만져진 흔적들 또한 모든 것이 순간성이자 시간성이다.
명확한 형태를, 현상을 마주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닌, 마치 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나온 세월에 깎이고 부딪히고 수없이 많은 굴절과 굴곡에 형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당연하게 우리 곁에 머무는 조형적 감각에 집중하며 작업한다. 선 하나를 그을 땐 숨과 근육에 집중하고 그 '선' 안에서 머무는 물감이나 물의 농도에 따라 짙거나 갈필이 나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고 중첩을 통한 조형적 언어를 읽으며 그림을 이어간다.
색채만이 아닌 질감의 덩어리는 직접 만졌을 때 마치 돌의 표면을 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 행위는 지도를 읽어가듯, 점자를 읽어내듯, 손에 느껴지는 촉감 그대로를, 어느 한 곳에 멈출 수도 또 각자의 손이 닿는 위치에서의 작품을 느끼고 사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믿고 상상하는 것, 바라는 것, 내가 기억하는 것 그 모든 것이 내 작품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