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중첩된 자리

스페이스 엄

2025.11.29 - 12.17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자리를 꿈꾼다. 일상에서 몸을 기댈 수 있는 소파, 출근길마다 바라보는 대중교통의 빈자리, 혹은 업무를 수행하는 책상처럼 우리는 수많은 자리를 전전하며 역할과 존재의 무게를 달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리들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우리의 삶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동하며 변형된다. 어느 날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믿었던 자리가 사라지고, 또 어떤 날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 앞에서 문득 멈춰 서게 된다. 그 변화의 순간들은 결국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되돌린다.


자리 시리즈는 내가 앉아왔던 수많은 의자를 떠올리는 데서 시작되었다. 의자는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일상적 사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존재했던 시간과 감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나의 자리라고 믿었던 의자가 어느 순간 다른 이의 것이 되거나,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리는 경험은 자리의 본질붙잡을 수 없고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을 드러낸다. 어느 날 멀찍이서 내가 앉았던 의자를 바라보았을 때 느꼈던 이질감은, 그 의자들이 결국 나 자신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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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첩된 자리_68.2x79.5cm_합판에 퍼티, 페인트_2025




본 전시의 연작 중첩된 자리에서 의자는 화면 속에서 때로는 쌓여 있고, 때로는 펼쳐진 형태로 등장한다. 동일한 모양의 의자들이 켜켜이 쌓여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장면은 일률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그 반복의 틈에서 오히려 서로 다른 형상으로도 보인다. 하나의 의자가 놓여 있을 때에는 지나치게 익숙하고 평범한 사물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 층층이 쌓인 순간은 마치 불안정한 탑처럼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우리 사회가 개인들에게 요구하는 비슷함의 압력을 떠올리게 된다. 비슷한 역할, 비슷한 속도, 비슷한 형태로 정렬되기를 기대받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동일함을 강요받는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겉으로는 동일한 의자들이 정돈된 구조로 배열되어 있지만, 그 사이에는 말해지지 않은 차이, 드러나지 못한 고유함이 눌려 있다. 쌓여 있는 의자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일률화된 구조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을 은유하는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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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_습작_30.2x15cm_합판에 퍼티, 페인트_2025




이 자리들은 화면 속에서 미세한 양감과 그림자로만 존재한다
. 빛의 각도에 따라 선명한 형체로 드러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는 흰 화면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적 불확실성은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존재론적 흔들림희미함, 불안정함, 미완의 감정을 시각화한 방식이다. 이 의자들은 누군가의 자리였을 수도, 아니었을 수도 있으며, 특정한 개인의 흔적이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지나간 발자취일 수도 있다.


비워진 방 자리_습작 속 의자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떠다니거나, 잠시 머물러 있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상태로 놓여 있다. 화면의 빈 여백은 또 다른 방, 또 다른 자리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처럼 열려 있으며, 관객이 자신의 경험을 투사할 공간으로 남겨진다. 자리는 마치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다시 흩어지고, 머무르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나는 그 부유하는 자리들 사이에서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내가 바라고 있는 자리 사이의 간극을 마주하게 된다.



내 작업에서의 의자는 결국 이름 붙여지지 않은 나의 위치를 탐색하는 도구이자, 나 자신을 표상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자리를 찾고자 할수록 지금 이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욕망이 드러나고, 더 나은 자리를 향한 갈망 속에서 나는 또 다른 공간으로 부유하게 된다. 중첩된 자리는 바로 그 흔들림의 감정,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마음의 구조, 그리고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복합적인 자리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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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된 자리_90.9x116.8cm_합판의 퍼티, 페인트_2025